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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. 난 왜 답장을 안 했을까?

Paulsvee 2011. 5. 13. 20:2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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투. 은성
은성아 나 희정이야. 답장이 늦어지는구나
난 많이 많이 기다렸었어. 일주일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
먼저 이렇게 펜을 들었어. 난 굳게 믿고 있었어.
네가 답장을 쓸꺼라고. 왜? 나하고 편지 친구 하기 싫어졌니?
그래서 편지 안 쓴거야? 난... 미안해
난 은성이가 나와 좋은 친구가 되줄꺼라 생각했었어.
지금도 그렇고. 요즘은 텅 비어 있는 우편함을 보면 한 숨만 나와.
내가 싫어서 편지 안 쓴거면 이 편지 답장 안 써도 좋아.
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꼭 답장 써줘. 기다릴께. 난 정말로
너와 친해지고 싶어. 이유? 글쎄... 이런 이야기는 그만 하자.
어쨌든 펜을 들었으니 다른 이야기도 할께. 나 특활 부서
'테니스'반 들었어. 배우고 싶었거든. 아직 하나도 몰라.
배워야지. 꼭 해보고 싶은거였어. 상상해봐 곧 여름이 올텐데
<벌써....> 땀 뻘뻘 흘리며 선생님 지도에 열중하고 있을
내 모습을. 우습지 않니? 테니스 선수도 되고 싶어.
(테니스에 'T'자도 모르면서 감히 탐내보는 거야.)
우리 학교는 한 달에 1번 둘째주 토요일 날 하루 종일
특활을 할꺼래. 아이들이 보다 열심히 특활 활동을 즐기게
하기 위해서. 우린 이제 모든 것이 평가 돼.
종합 생활 기록부인가 하는 거 때문에. 그래서 다 잘해야만 돼.
걱정이야... 잘 할 수 있을지... 은성이가 기도(?)해 줄래?
네가 믿는 신에게. 희정이가 테니스 잘 칠 수 있게.
아마 큰 힘이 될꺼야. <사실 테니스부에 아는 친구 아무도 없어...>
그럴꺼지? 약속해~ 은성아 이만 줄일께. 왜냐구? 졸려.
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하거든.
Good night!
from. kercy


p.s.
I miss your letter.

p.p.s.
Answeer me please

p.p.p.s.
Good luck to you!


야! 그런데... 정말 왜 편지 안 쓰니?
궁금해-
설마 저번에 내가 보낸 편지가 안 도착한 건
아닐테고. 내가 싫어서? 맘에 안 들어서?

Answer Me 플리즈


- 원수연표 일러스트 편지.
- 아마 이때 한창 원수연표 일러스트가 유행했던 때인 것 같기도 하다 :)


- 1996년 3월 26일 받은 편지 :) // 15년 전 편지 :)


# 지금
지금 생각해보면 희정이가 나를 금방 포기(?)하지 않은게 참 고맙다.
희정이가 금방 나를 잊었더라면 우리는 그렇게 긴 시간동안 편지를 주고 받지 못 했을테니깐...
근데 나는 왜 답장을 느리게 했을까? 집에서 할 일도 없었을텐데 ㅎㅎㅎ
이 때 하는 일이라곤... 다리가 다쳐 있었으니깐...
집에서 책 보고... 그림 그리고... TV 보고... 그게 다였을텐데 ㅎㅎ
참말로 희한한 녀석이네 ㅎㅎ
왜 엄한 사람 애를 태우고 말이야- _-ㅋ
그 때 기억이 전혀 안 나니 내가 답장을 어떻게 했을지도 전혀 감을 못 잡겠다.
아마도... 움... 착한 스타일로- _-;;; 변명은 아닐테고 해명을 했을게 뻔할 것 같은데...
무슨 이유였을까...? 희정이가 마음에 안 들었나? 그럴리가? 그건 아닌 것 같은데 :)

다시 느끼지만...
일상적인 포근함을 간직한 순수한 희정이의 편지가 참 좋다.
이렇게 15년이 지난 지금의 내게 하루하루 재미와 설렘을 준다 :)

지난 시간을 돌아보거나, 지난 시간 속에 있는 내가 어쩌면 움...
뭔가... 뭐랄까? 늙었다? 할 일이 없다? 움... 에이, 그건 아니고 ㅎㅎ
그냥... 나를 다시 돌아볼 수도 있고...
순수함을 만날 수도 있어서 참 좋다 :)

이렇게 시간이 흐른 후에도 편안함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건...
참 좋은 일인 것 같다. 지금도 연락이 되고 좋은 친구로 지낸다면
그것도 재밌겠다... 하는 생각도 든다.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...
이렇게 다시 회상할 수 있고 뭔가 설레나 보다 :)

p.s. 근데 우리의 펜팔 끝은... 어땠지?
뭔가 우울했던 것 같은데...
차근차근 돌아보자 :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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